양산 통도사 법사스님 감동이야기
조선의 정조대왕 시절에 경남 양산 통도사에는 훌륭한 법사 스님이 계셨다. 양산 통도사의 일주문 앞에 보에 쌓여 놓여 있었는데 마침 그 곳을 지나던 스님 한 분이 통도사로 데리고 와 절에서 기르게 되었던 것이다. 된 것에는 사연이 있었다. 어느날 젊은 부인이 한 사람 찾아와 주지 스님을 친견 하였는데 그 때 갓난 아이를 보듬고 왔었다. 공양주도 잘 할 수 있습니다. 그러니 이 엄동 설한에 우리 모자는 굶어 죽지 않으면 눈 속에 얼어 죽을 것 같으니 해동을 할 때 까지 만이라도 제가 여기서 일을 하면서 이 갓난 아이와 같이 지낼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. 그 때 주지 스님은 대중 공사(사찰에서 말하는 일종의 재판 같은 회의를 말함)를 모든 대중이 모인데서 붙혔다. 좋아 하는 자들로 인하여 어떤 불미스런 헛 소문이 날지를 모른다. 젊은 스님 누군가와 눈이 맞아 애를 놓았다느니 아니면 젊다 보니 앞으로 있을 어떤 스님과의 연분이 생길 수 도 있기 때문에 이 곳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였다. 어린 갓난 아이를 일주문 옆에 두고서 떠나 버린 것이었다. 그런데 그 아이가 크면서 얼마나 신통한지 스님들이 법문을 하실라 치면 늘 앞에 정좌하고 앉아서 요지부동도 않은체 듣는 즉시 외워 버리는것이었다. 구름처럼 사람이 모여 들었다. 듣고 있던 어떤 노 보살님이 혼자 말로.. "대체 저 법사 스님의 어머니는 어떤 분일까? 훌륭하게 잘 키우셨을까?" 있던 한 보살이 "예~ 제가 저 법사 스님의 애미 입니다." 모든 사람에게 쫙 퍼진 것이었다. 마침내는 법사 스님이 법문을 하고 있는 그 사이에 듣게 되었다. 사람 보고 좀 기다리라고 하고는 모든 사부대중을 불러 놓고 의논을 하였다. 스님들의 생각은 어떠 하신지요? 제가 만나뵈어도 되겠습니까? 그러자 모두가 하나 같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.. 앞에 두고 갈 때는 언제이고 이제 와서 훌륭한 법사 스님이 되시니까 어디 애미된 도리 입니까?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. 대중공사가 그렇게 결정이 나자 법사 스님이 그 어머니 되는 사람을 들어 오게 하여서 마주 앉아서 하는 말.. 이제 두 번 다시는 나를 아들이라고도 하지 말고 또 그대가 법사 스님의 엄니 이네. 하는 말도 마시오. 죽으라고 버리고 갈 때는 언제이고 이제 와서 내 아들이네~ 하는 것은 무슨 심보요. 절대로 어디 가서 법사 스님이 내 아들이란 소리는 마시고 두 번 다시는 나를 아는채도 마시구려.. 그 무렵 법사 스님이 있는데 그 스님이 법문을 할 때면 사람들이 구름 처럼 모여 든다는 소문이 들린 것이다. 양산으로 내려가서 그 어머니를 모시고 오도록 하시요. 어명을 받고 양산 통도사로 내려온 신하들이 다시 정조대왕 에게 이르기를.. 그 어머니에 대한 자초 지종을 모두 고하자 정조대왕이 통도사의 법사 스님에게 편지 한통을 전했었다. 그 어찌 자신을 낳아준 어머님 만큼이나 하리오. 하나 그것은 그렇지가 않구려. 파리의 목숨도 귀하게 여기는 스님들은 자식을 여기 두고 가도 분명 살려 주었으면 주었지 어찌 산 생명을 죽도록 내 버려 두겠는가. 죽으라고 버리고 간 것이 아닙니다. 이 편지를 받아든 법사 스님.. 수소문 하여서 길을 떠나 찾아 다니기 시작을 했었다. 한채 뿐인 집에 들어가서 묻기를.. 혹시 이러 이러한 노 보살이 이 부근에 사시는거 모르시요? 그러자 그 집의 노인이 나와서 언덕밑의 집 한체를 가르키며.. 집에 있는 것이고 불이 꺼졌다면 약방에 갔거나 아니면 죽었을 것이요. 법사 스님이 그 소리를 듣고는 주인장 계시요 ? 살며시 열어 보니 분명 누군가가 이불을 푹 뒤집어 쓰고 있는 것이 보였다. 어머니가 거의 죽어 가는 모습으로 누워 있는데.. 머리 맡에는 언제 먹었던 죽 그릇 인지는 몰라도 바싹 말라서 쩍쩍 갈라져 있었고 방안은 냉기가 흐르고 입에서는 입김이 솟아 나왔다. 그때 법사 스님이 호롱 불을 자신의 얼굴에 가까이 갖다 대자 더 많은 법문으로와 같이 지낼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. 부디 훌륭한 스님이 되시구려. 이제 나는 내 마지막 소원을 들었구려~ 양산 통도사로 뛰기 시작 했었다. 미음을 쑤고 약을 다리어 그 어머니를 살렸고 그렇게 지내던 어머니가 양산 통도사에 온지 3년이 되는 해에 세상을 뜨셨다. 그 때 법사 스님이 그 어머니를 위하여 49제를 드리는데 법문을 한 곡조 올린다. 그렇게 49제 마지막 막제에서 법문을 하자 그의 어머니 음성이 다시 법당안을 멤돈다. |